◆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① 상하이 ◆
![중국 상하이시 마당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1층에서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한국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기 1년 전인 1948년 모습을 본떠 제작됐다.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마당로 청사`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지만 매일경제신문은 주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지난달 24일 사진 취재가 가능했다. [상하이 = 이승환 기자]](http://file.mk.co.kr/meet/neds/2019/02/image_readtop_2019_86549_15499708043633932.jpg)  중국 상하이시 마당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1층에서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한국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기 1년 전인 1948년 모습을 본떠 제작됐다.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마당로 청사`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지만 매일경제신문은 주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지난달 24일 사진 취재가 가능했다. [상하이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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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7시. 중국 상하이 황푸강 유람선. 와이탄(外灘) 일대로 시선을 돌리자 옛 일본영사관 건물이 황금빛 조명을 쬐는 중이었다.
휘황찬란한 야경으로 유명한 상하이 밤거리, 와이바이두다리 옆 황푸루 106 건물은 100년 전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됐다. 채소 쓰레기 더미에서 배추 껍질을 주워 시래깃국을 끓여 연명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한 세기 전 풍찬노숙을 떠올리니, 황금빛으로 분칠한 붉은 벽돌 건물은 여전히 일장기 태양을 은유하는 부표 같았다. 식민지에서 망명한 `조센진(朝鮮人)`과 `왕궈누(亡國奴·한국인을 멸시하던 일부 중국인의 은어)`는 골방의 찬 이불 속에서 숨죽인 채 어둠을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모든 한국인은 `조센진이자 왕궈누`의 후예다. 대한민국 독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기억은 사라져가도, 누군가의 눈물과 핏물 위에 대한민국은 세워졌다.
올해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매일경제신문은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全) 청사와 유적지를 1~2월 2회에 걸쳐 탐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 하면 1919년 프랑스 조계지에서 태어난 상하이 임시정부와 1945년 광복 소식을 접한 충칭 임시정부만을 떠올리기 쉽다. 한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륙의 초라한 골목, 노지, 산정, 강가에서 가느다란 점선처럼 명맥을 이어왔다.
중국은 당시 한국인의 염원이 집결된 항일투쟁 요람이었다. 매일경제신문은 임정 요인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보이지 않는 간판을 어깨에 걸머지고 걸었던 총 3000㎞를 승합차와 기차로 이동해 대한민국의 옛 그림자를 쫓았다. 중국 상하이에서 항저우,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임시정부와 자싱, 하이옌, 전장, 난징, 쭌이, 시안까지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거쳤던 13개 도시의 독립운동 현장이다. 일부 유적지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른 곳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 내 임시정부청사가 7곳인지, 8곳인지 아직도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우리의 씁쓸한 현주소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추진한 이번 르포에는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이 동행했다. 주상하이대한민국총영사관,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이번 취재를 지원했다.홍 실장은 "독립운동이란 당대의 시대 정신을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 실천한 것이고, 그들의 실천은 우리가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임시정부 27년사`는 망각의 물결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 숨 쉬던 한민족이란 생물(生物)의 역사였다. 왕궈누의 멍에를 쓰다듬는 긴 가시밭길의 궤적을 추적해 연재 보도한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에게 보내는 뒤늦은 전보이자, 후대가 띄우는 부끄러운 제문(祭文)이다.
[상하이 =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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