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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운동 당시는 천도교를 국가로 인식 남북 천도교 교류 사업, 올해 주력할 것”-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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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9-01-10 12:27 조회 366

‘3·1 운동 주역’ 천도교 교세 확장 나선 이정희 교령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이정희 교령(가운데)이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임형진 천도교종학대학원 원장, 오른쪽은 이범창 종무원장.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이정희 교령(가운데)이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임형진 천도교종학대학원 원장, 오른쪽은 이범창 종무원장.

100년 전 벌어진 3·1운동의 주역은 천도교였다. 천도교의 3대 교조였던 의암 손병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300만명이었던 천도교 교도는 100년이 지난 지금 비할 바 없이 줄어들었다. 한국에서 ‘7대 종단’ 지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종단’만이 참여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천도교는 대대적인 교세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이정희 교령은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이제 반등해야 할 때”라며 “10년 안에 교도 수를 다시 300만명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종교 어울려 삼일절 100돌 행사 
10년 내 교도 수 300만명 회복
김구 귀국 후 손병희 먼저 참배 
3·1의 실상 ‘공동자료집’ 발간

천도교는 먼저 ‘3·1운동은 곧 천도교’라는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임형진 천도교 종학대학원 원장은 “손병희 교조는 제2의 동학혁명이란 생각으로 3·1운동을 준비했다”며 “민족대표에 개신교와 불교계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조직한 사람도 손병희 교조”라고 말했다.

이정희 교령은 “3·1운동 당시는 천도교가 곧 국가였다”며 “김구 선생이 귀국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서울 우이동에 있는 손병희 교조의 묘였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도교는 올해 삼일절에 서울에서 개신교, 불교와 함께 대규모 기념식을 열 계획이다. 개신교, 불교는 100년 전 천도교와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던 종단이다. 정정숙 천도교 사회문화관장은 “모든 종교와 시민사회단체가 한데 어우러지는 형태로 진행할 것”이라며 “행사장소는 독립선언서 인쇄 및 배포가 이뤄졌던 천도교 중앙대교당(서울 종로구) 앞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공동자료집’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천도교, 개신교, 불교계 1인씩이 공동편찬위원장을 맡아 ‘3·1운동의 실상’을 명확하게 정리할 계획이다. 연구책임자로는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기독교), 공동편찬위원장으로 윤석한 한양대 명예교수(천도교)와 일감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이 이미 내정됐다. 이와 함께 북측 천도교 인사들과의 교류도 올해 주력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민족종교인 천도교는 1860년 최제우 수운대신사가 ‘양반, 천민 구분 없이 사람은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상을 담은 동학을 창도한 이후 1905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정희 교령은 “올해는 우리나라의 운수가 크게 열리는 해”라며 “3·1운동 100주년 행사는 지나간 역사를 교육하고 기억하는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 10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