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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19 한겨레] 흥청망청 양반들, 우리도 꼴불견이오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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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9-01-09 09:20 조회 119
군소리ㅣ총독부, 요리집 등에서 연말 부랑자 단속… 식민지배 비판 양반층 겨냥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경성 최고의 유흥가인 ‘혼마치’(本町·명동).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주로 거주하는 으뜸 동네라는 뜻에서 혼마치라고 이름 지었다. 한겨레 총독부 경찰이 지난 연말 요릿집과 기생집을 대상으로 부랑자 일제 검거에 나선 것을 두고 조선인 상류층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총독부가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식민통치에 비판적인 양반층을 부랑자로 몰아 잡아들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그나저나 나라가 망하니 주지육림에 놀고먹던 양반 처지도 참 딱하게 생겼다.

지난달 17일, 경성 종로경찰서는 전날 자정부터 요릿집과 기생집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부랑자 수십명을 검거해 모두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종로서는 비번 순사 100여명을 비상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단속은 연말을 당하여 각처의 부랑자가 늘어나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신고에 따른 것이라고 하나 신고 건수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부랑자는 일정하게 사는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집 없는 사람을 일컫는데 이번에 검거된 양반층은 거주지가 분명한 이가 대부분이라 뒷말도 무성하다. 총독부의 부랑자 단속 배경에 양반층을 압박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의병 항쟁의 구심이자, 향촌 단위에서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식민통치에 비판적이던 양반과 상류층에 대한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단속의 백태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날 밤 요리점에서 기생을 데리고 흥청거리며 놀던 유야랑(遊冶郞, 주색잡기에 빠진 사람)들은 청천에 벽력이 내릴 듯이 별안간 혼이 나서 망지소조(罔知所措,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하는 광경이 일장활극을 이루었고 더구나 각 기생의 집에서는 누워 자다가 벼락을 맞은 기생과 어떤 자와 함께 자다가 잡혀간 기생 등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더라.”

총독부의 부랑자 단속은 임자년(1912) 3월25일 조선총독부령으로 발포된 경찰범 처벌규칙 1조 2항(일정한 거주 또는 생업 없이 제방을 배회하는 자를 처벌한다)에 근거해 해마다 무시로 벌어지고 있다. 주로 부호층의 청년 자제, 양반 유생, 대한제국의 관료 등이 부랑자로 단속돼왔다.

갑인년(1914) 11월20일자 <매일신보>를 보면 부랑자 단속 과정을 구구절절 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인 경찰서장이 기생집에서 검거해 온 대한제국의 관료와 양반을 훈계하는 장면과 상류층의 부랑자들이 유치장에서 노동교화를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 양반층 부랑자를 ‘조선 민족 후진성의 증거이자 망국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흥청망청 놀고먹기 바쁜 양반들이 망국의 원인인 것은 맞지만, 그건 조선 민중이 할 소리지 도적떼인 총독부가 할 말은 아닌 듯싶소만. 마포 오첨지



△참고문헌

-예지숙, '일제시기 조선에서 부랑자의 출현과 행정당국의 대책', <사회와역사>(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