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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더라도 뼈만은 조선 땅에…” ‘하나 된 독립운동’ 꿈꾼 만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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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8-03-02 09:57 조회 145

ㆍ3·1절 99주년 - 한용운 ‘독립운동 발자취’ 연해주를 가다

 

“죽더라도 뼈만은 조선 땅에…” ‘하나 된 독립운동’ 꿈꾼 만해

1907년 설악산에서 은거하던 만해 한용운이 별안간 보따리 몇 개를 꾸려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 제국주의 광풍에 휩쓸리던 시기 러일전쟁 후유증을 앓던 연해주는 승려의 유람지로 녹록한 곳은 아니었다.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만해는 조선 청년들에게 친일단체 일진회 회원으로 오해받는다. 조선 청년들과 싸우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서울로 돌아온다.

 

연해주는 만해에게 어떤 곳이었을까. 그는 1935년 발표한 ‘북대륙의 하룻밤’에서 여정 이유를 “세계 만유”라 밝혔지만, 연해주행을 여행으로만 볼 수 없다. 그는 청년들과 격투를 벌이면서 “죽더라도 뼈만은 조선 땅에 묻어 달라”고 했다. 

고재석 동국대 만해연구소 소장은 “만해가 연해주행에 관해 쓴 글 행간을 읽어보면, 그는 이곳에서 국내외를 연계한 하나의 독립운동 가능성을 타진한 것 같다”면서 “만해가 이후 일본과 만주로도 간 것을 보면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갖고 독립운동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만해로드 대장정’ 탐방단은 3·1운동 99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만해의 길’을 찾아 떠났다. 111년 전 만해의 의지가 서린 길을 따라 러시아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개척하려는 발걸음이다. 3박4일 탐방엔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 행정협의회’도 함께했다. 

 

‘3·1 독립선언’ 참여와 3년의 옥고, 저항정신과 독립의 염원을 담은 시 ‘님의 침묵’ 발표,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 운동까지…. 연해주는 굴하지 않던 만해 정신의 근거지 중 하나로 꼽힌다. 구한말인 1860년대 수탈과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떠난 한인들이 정착했던 곳이고,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 주요 기지 역할을 수행한 곳도 연해주였다. 

탐방단은 고려인 강제 이주가 시작된 우수리스크 라즈돌리노예역, 안중근 의사가 무명지를 자르고 독립운동을 결의한 크라스키노 등 유적지를 찾았다. 첫 탐방지는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카야의 고려인 마을 ‘신한촌’. 연해주 독립운동 본산이던 이곳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한인 1만명이 살았던 신한촌의 존재는 기념비로만 알 수 있다. 기념비를 찾은 것은 찬바람이 매섭던 지난 25일이다. 기념비만 남은 유적지를 고려인 후손들이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