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사상, 이념, 지역을 초월한 삼일독립정신을 토대로 임금의 나라 ‘대한제국’을 끝내고 백성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혁명적인 출범을 했다. 그것은 우리 민족 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정의 실시를 내외에 선포한 것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때 주춧돌이 놓였다.
이 때문에 1948년 제헌의회 개원식의 개회사에서 의장인 이승만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이십구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라고 했다. 실제 우리 정부의 관보 제1호는 발행일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명시했다. 그 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헌법의 전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것도 결코 일개 수식어일 수 없고, 엄연히 이런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마땅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부터 건립하여 이런 민주공화정의 시대정신을 역사적 연원으로부터 소개하며, 이를 지키고 달성하고자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피 흘려 싸웠는지를 후세에 알려야 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국민교육이었다. 그 시점에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를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뿌리도 없는 외래 민주주의를 광복 이후에 비로소 직수입한 후진국인 양 스스로 비하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왜 이런 착시가 일어났을까? 일부 부일·반민족 세력이 냉전·수구 논리를 앞세워 마치 임정이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를 구성한 대통령(이승만), 부통령(이시영), 국무총리(이범석) 모두가 임정 인사다. 제2대 총선거에서는 제헌의회 선거에 불참했던 인사들, 이를테면 조소앙, 지청천, 김붕준, 윤기섭 등도 대거 참여했다. 불행히 그분들 중 많은 이가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