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 [이 사람]독립운동 가족사 ‘줄리아의 가족 순례기’ 펴낸 김주영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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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8211412…[8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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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국 집 마당엔 무궁화, 명절 땐 ‘경상도국’ 끓여” ▲ “할아버지 일봉 선생 탄생 100년… 뒤늦게 책 내게 돼 불효한 셈 아버지는 문혁 때 중국서 고초… 대한 후손 민족성은 잊지 않아” 독립운동가 일봉 김대지 선생(1891~1943)의 묘소는 중국 헤이룽장성 아성현의 황야 어딘가로 추정될 뿐이다. 선생은 광복을 2년 앞둔 혹한의 겨울 “우리는 망국노다”라는 말만 남긴 채 비석도 없는 초라한 흙무덤에 묻혔다. 훗날 가족들이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은 이미 옥수수밭이 돼 버린 뒤였다. 의열단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선생이지만, 고국에서도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됐다. ![]() 정부가 1989년에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것은 후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최근 출간된 <줄리아의 가족 순례기>(레드우드)는 선생의 손녀 김주영씨(60·미국명 줄리아 리·사진)가 할아버지와 아버지 2대에 걸친 가족사를 정리한 책이다. 김대지 선생이 태어난 1891년부터 아들 김명 선생이 사망한 1991년까지는 우연히도 꼭 100년의 시간이다. 저자 김주영씨의 표현처럼 ‘우리 민족 100년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8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광복 44년 뒤에야 훈장을 받았고 그 뒤로 26년이 지난 지금에야 불효한 후손들이 할아버지에 관한 책을 내게 됐다”는 감회를 전했다. 경남 밀양 출신의 김대지 선생은 1910년대 두 개의 주요 비밀결사였던 ‘광복회’와 ‘일합사’를 조직했다. 대한광복단으로 이어간 무장투쟁의 흐름은 대표적인 무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으로 집약됐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29인의 발기인이기도 한 선생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막후에서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아들 김명 선생(1917~1991)도 아버지에 이어 중국에서 조선의용군 제3지대 창설에 앞장서며 항일투쟁을 벌였다. 해방 뒤에는 중국 혁명에 참가했고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고위 간부로 일했다. ![]() 공적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지만 김대지 선생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독립운동 참여자 중 국가보훈처 등록 독립유공자는 1만3000여명에 불과하다. 김씨는 “북만주 지역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몇 명의 개인에게 모든 공적을 몰아주고 마치 그들만이 흐름을 좌우한 듯이 기술돼 있음에 분개했다”며 “광복 후 나라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친일은 어쩔 수 없다’며 미화하거나 ‘김구는 테러리스트’였다는 말까지 횡행하는 것에 대해 김씨는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모든 친일파들이 광복 후 철저히 뿌리가 뽑혔고 한간(漢奸) 주구는 살인자보다 더 흉악한, 최악의 수치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책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은 쉽지 않았다.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투쟁경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아들 김명 선생이 1985년 전후 남긴 회고록이 소중한 자료가 됐다. 혈혈단신 귀국해 생활고 속에서도 아버지 관련 자료를 모았던 삼촌도 큰 힘이 됐다. 김씨는 이를 토대로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선생의 의열단 활동 관련 자료를 더 찾아내 이번 책에 실었다. 생전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묘사는 생생하다. 김씨는 “아버지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수십번씩 들려주셨다. 거의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명 선생은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다가 문화대혁명 때 ‘반동’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다. 12살에 이를 겪은 김씨는 책에서 당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참상을 전한다. 김씨는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같은 대학 법대 교수였던 남편이 교환학자로 미국에 가게 되자 1990년 미국행을 선택했다. 가족 3대는 결국 마음과는 달리 몸은 고국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김씨는 미국 집 마당에 무궁화를 심고, 명절 때면 할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경상도국’을 끓인다. 그는 책에서 “이전에는 중국 시민권자,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지만 ‘대한의 후손’이라는 민족성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책의 에필로그 제목을 ‘우리에게는 여전히 의열단이 필요하다’고 지었다. 그는 “절망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서 싸운 할아버지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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