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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종찬 ″정보기관 역할, 국민에 봉사...박 대통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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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3-12-02 12:18 조회 21,481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이병화 기자photolbh@
아시아투데이 윤희훈 기자 = 지난해 12월 19일 18대 대통령선거를 치른지 1년여가 지났지만 대선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로 촉발된 국가기관의 정치개입 사건은 군 사이버사령부까지 의혹 대상이 확대됐다.
여기에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120만건의 트위터 게시글까지 발견됐다.
국정원에서는 ‘셀프개혁’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개혁 내용은 확정된 것이 없다.
정보기관 개혁과 관련한 논의가 정국 공방의 핵으로 등장한 가운데, 초대 국정원장으로 국가 정보기관 개혁을 추진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만났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정부가 안기부를 없애고 국정원을 창설했을 당시의 개혁을 보면 그 곳에 답이 있다”며 국정원 창설 당시 기구도를 펴놓고 조직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담은 1일 서울 종로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 진행됐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하만주 아시아투데이 정치부장이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관련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병화 기자photolbh@
대담 = 하만주 정치부장
다음은 일문일답.
-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파장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그렇다. 최근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제일 큰 문제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국정원에서는 스스로 개혁하겠다는 말은 나오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건 없다. 김대중정부가 안기부를 없애고 국정원을 창설했을 당시의 개혁을 보면 그 곳에 답이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했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를 국정원으로 개명하고 내부 시스템을 개혁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정치인이다. 납치를 당하고 사형선고도 받고 망명도 하고 연금도 당했다. 당시 개혁을 하면서 정보기관이 정치개입을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정리했다. 조직을 정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일하던 임원들이 국정원을 떠나게 됐다. 당시 떠난 사람들은 원망을 했겠지만 그게 시대적 요청이었다.”

- 개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안기부에서의 영문 명칭은 'agency'(기구) 였는데 이를 ‘service’(봉사)로 바꿨다. 여기에 핵심이 담겨있다. 정보기관의 역할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소용돌이 치는 국제정세에서 올바른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정보, 국내에서 준동하는 간첩을 색출하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았다.”

- 그랬던 국정원이 왜 다시 정치개입을 하게 됐을까.

“국정원 창설 당시 부훈은 ‘정보는 국력이다’ 이었다. 그런데 이 부훈이 이명박 정부들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으로 바뀌었다. 자유와 진리는 사람마다 각자 해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댓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난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진리가 된다. 그리고 상관의 지시로 인터넷에서 댓글을 다는 것을 헌신으로 생각하게 된다. 국정원은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이지 댓글로 논쟁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종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해야한다’ 이런 이야기를 왜 국정원이 해야하나.”

- 국정원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바꿔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박 대통령의 책임은 아니다. 거기에 말려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왜 말려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임 대통령의 일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조사하고 끊으면 된다. 벌써 1년을 끌고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대통령이 사퇴까지 할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청사건을 감추려고 하면서 사안이 확대됐다. 애초에 끊었어야 했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이병화 기자photolbh@
- 원로정치인으로서 최근 여야 대립 국면은 어떻게 보는가.

“3김 청산 이후, 정당이 어떤 정치를 해야한다는 분명한 그림이 없다. 김한길 대표의 결정에 민주당이 따르지도 않고 여당은 청와대만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3김시대가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리더의 리더십도 없고 정치력이 이렇게 무력한 시기가 없었다.”

- 김대중정부 당시 정치 상황과 비교를 하면 어떤지.

“김 전 대통령은 원내문제는 국회에 일임했다. 일일이 간섭 안했다. 국회와 청와대가 언제든지 이야기를 해서 방안을 찾아냈다. 여당 대표가 청와대나 대통령은 고사하고 겨우 정무수석과 대화를 하는 건 아니다.”


-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두고서도 이념 갈등이 심하다.

“역사 교과서 문제를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니까 해법을 못찾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후세를 잘 가르쳐서 올바른 민족성원을 만드는 게 목적인데, 목적은 어디가고 수단만 갖고 싸우고 있다. 역사적 인식을 어떻게 조화를 이뤄서 나갈 것인지 고민을 해야하는데 계속 혼돈만 일으키고 있다.”

- 최근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범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안중근 의사는 독립군 장군으로서 적장을 쏜 것이다. 그래서 재판장에서도 ‘나는 포로지 살인범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안 의사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독립군 중장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내용을 갖고 일본을 추궁해야하는데 올바른 역사교육이 안되니까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다.”

- 대한민국 건국일 논란은 어떻게 보나.

“대한민국 수립일을 1948년 8월 15일로 해서 건국절을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런데 우리 헌법 전문을 보면 ‘임시정부의 계통을 이어간다’고 돼있다. 이승만 정부 관보 1호도 대한민국 30년으로 돼있다. 그게 이승만 대통령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한다. 그게 잘못됐다. 이승만 박사의 정신 철학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현재 이승만 박사 기념회를 하면서 이 박사를 욕먹게 하고 있다.”

- 임시정부 비판론도 많은데.

“저의 선대인 우당(이회영) 선생님과 이시영 부통령, 두 분도 임시정부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우당께서는 임시정부를 거부하고 독립군 활동에 투신하시고, 이시영 부통령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키고 초대 법무장관을 했다. 우당 기념사업회를 하면서 임시정부를 살펴보니 많은 문제도 있었지만 공도 많다.”

- 임시정부기념관을 짓자는 요구가 있던데.

“개인적으로 백범기념관보다 임시정부기념관을 먼저 지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범사업회에서는 섭섭하다고 하겠지만(웃음) 원칙은 원칙이다. 일부에서 백범기념관으로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백범 선생이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임시정부 자체는 아니다. 우리 헌법 정신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문제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77)은 육군사관학교 16기로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다 1971년 예편, 공무원이 됐다.
1980년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역임하고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12~14대 국회의원까지 4선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 안기부장이 되고 국가정보원으로 개편되자 초대 국정원장이 됐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고, 초대 부통령 이시영은 종조부이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는 사촌형제 간이다. 현 우당기념관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