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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혹에 비로소 조국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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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3-08-20 11:13 조회 21,590
 

동농 김가진 일가의 임정 이동 경로 따라 고단한 여정 생생히 재현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다”

 

기사사진과 설명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앞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앞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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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전투복.

한국광복군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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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등 독립투사들이 사용했던 도시락 폭탄과 물통 폭탄 모형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윤봉길 의사 등 독립투사들이 사용했던 도시락 폭탄과 물통 폭탄 모형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불혹이라는 사십의 나이에 비로소 조국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조국의 이름으로 이역에서 산화한 이들을 동정호(호남성에 있는 중국 최대 호수) 물에 흘려 보내면서 조국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달았다. 나는 아들(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 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던 수당 정정화의 ‘장강일기’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에는 일제 강점기시대 나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당시 정정화는 시아버지 동농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을 도우며 광활한 중국 벌판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지난 13일 개막한 광복절 기념 특별전 ‘조국으로 가는 길-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동농 김가진(1846∼1922) 일가의 치열했던 삶을 조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협조로 오는 10월 13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한 유일한 대한제국 대신 동농 김가진과 임시정부 안살림꾼 수당 정정화를 중심으로 풀어내 관람객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단한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회는 ▲서울 출신 개화파 관료 김가진 ▲새로운 선택 상하이 망명 ▲고달픈 망명생활상 ▲강물에 뜬 망명정부 ▲조국으로 가는 길로 구성됐고 각 코너마다 다양한 유물을 배치해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안동 김씨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서얼이었던 김가진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능통해 격동의 시기 최장수 일본공사를 역임했다. 50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대신이 돼 서얼로서 정1품 반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 된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칩거했던 그는 1919년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조선민족 대동단 총재로 활동했다. 그해 10월 대한제국 대신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고문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을 준비하다 1922년 사망했다.

 수당 정정화는 1919년 시아버지 감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상하이로 망명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는 일념으로 1920년 무작정 상해로 망명했다. 이후 그녀는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백범 김구, 이동녕 등 임정 요인과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다수의 유물자료는 물론 상하이ㆍ자싱ㆍ충칭 등 임시정부 망명길을 따라 구체적인 시공간을 재현하고, 고달팠던 망명생활 뒷이야기를 연극 기법으로 풀어내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엄마 아빠와 전시장을 찾은 심지영(8) 양은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이분들(독립운동가)의 값진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전시회에 와 보고 알았다”면서 “항상 이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겠다. 나도 어른이 되면 국가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