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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뷰]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념 사업회장 - 소년한국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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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2-04-18 17:05 조회 20,915
"흩어졌던 애국지사 모여… 독립운동 구심점"
감시 심했던 망명 생활은 고난의 연속
김구·윤봉길 선생, 아버지처럼 기억돼
1919년 4월 13일, 민족 지사들이 일본 제국에 맞서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중국 상하이에 세웠다.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디딤돌이었던 임시 정부가 세워진 지 13일로 93주년을 맞는다. 12일, 서울 태평로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념 사업회의 김자동 회장(85)을 만나 당시의 활동에 대해 들었다.

Q. 임시 정부는 어떤 일을 했었나요?

A. 임시 정부는 1919년 3ㆍ1운동 이후 흩어져 있던 애국지사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작은 정부예요.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은 없었지만 독립운동가의 근거지 역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등 많은 독립운동을 앞장서 이끌었지요.

Q. 회장님은 임시 정부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A. 나의 아버지(김의한)와 어머니(정정화)도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셨지요. 아버지께서는 항일 독립 운동 단체인 '애국단'을 조직했고, 어머니는 여러 차례 국경을 넘나들며 임시 정부에 독립 자금을 전했답니다.

Q. 임시 정부 시절에 태어나셨는데, 당시 애국지사들과의 특별한 추억은 무엇인가요?

A. 역사책에 오르내리는 김구ㆍ이동녕ㆍ윤봉길 선생 등은 훌륭한 독립운동가이기에 앞서 나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요. 특히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시절 매일같이 함께 밥을 먹고 지낼 정도로 저희 가족과 각별한 사이였지요. 국내에 돌아와서는 중학교 졸업식에 직접 찾아와 축사를 해 주시기도 했답니다.

Q. 어린 시절 망명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A. 중국 생활은 피난의 연속이었어요. 특히 다섯 살 때인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일으킨 뒤 감시가 더 심해졌지요. 이후 우리 가족과 임시 정부의 식구들은 항주, 남경, 중경 등으로 계속 옮겨 다니며 활동을 이어갔지요. 심지어 한 달간 나무 배에서 숨어 지낸 적도 있어요.

Q. 우리 어린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조상들이 힘들게 지켜온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이를 위해서는 역사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요.

Q. 앞으로의 계획은요?

A. 임시 정부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념관을 꼭 만들고 싶어요. 27년간의 노력이 교과서에는 몇 줄로만 표현돼 있는게 늘 아쉽고 안타까웠거든요. 기념관이 세워지면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와 애국지사의 혼을 느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