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1운동 100년, 2020 동아일보 100년] 홍진 의정원 의장의 美거주 손자, 기증 유언에 부인이 실물 첫 공개 “홍진 흉상 건립될 4월 국회 기증”… 한국 떠난지 46년만에 美서 귀환
1919년부터 쓰인 ‘임시의정원印’ 국새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관인(왼쪽 사진)과 인주를 묻혀 찍은 모습.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정의 국새(임시의정원 관인·官印)가 4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임정 임시의정원 의장 및 국무령을 지낸 만오 홍진(晩悟 洪震·1877∼1946) 선생의 손자며느리 신창휴 씨(85·미국 거주)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홍진 선생의 동상이 국회에 건립되는 날 남편이 보관해 온 임시의정원 관인을 국회에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인은 오늘날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의 각종 공문서에 찍었던 도장이다. “대한민국은 최고 권력이 임시의정원에 있음”(1927년 개정 임시약헌 제2조)을 비롯한 임정 임시헌법 조항으로 볼 때 임정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임정과 더불어 중국에서만 4000km를 옮겨 다녔고, 홍진 선생의 손자인 고(故) 석주(錫柱) 씨의 도일과 귀국, 도미까지 100년 동안 바다를 4번 건너며 수만 km를 이동한 관인이 한국에서 제자리를 찾는 셈이다.
신 씨가 본보에 공개한 이 관인은 ‘臨時議政院印(임시의정원인)’이라고 새겨진 검은색 목제 도장이다. 석주 씨는 이 관인이 “할아버지(홍진)가 1945년 충칭에서 갖고 돌아왔다. 1919년부터 의정원 인장으로 쓰인 임시의정원인”이라고 설명한 문서를 남겼다. 석주 씨는 6·25전쟁을 비롯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이 관인을 온전히 간직해 왔다. 1973년 미국 이민 뒤에도 조부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길 바라며 여러 차례 관인을 한국에 기증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16년 87세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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