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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립운동 요람’ 배화여고 과학관·본관, 문화재 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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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6-08-16 16:36 조회 19,973
1927년 촬영한 배화여고 전경. 초가지붕 민가들 뒤로 본관·생활관·과학관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서울시 제공

1927년 촬영한 배화여고 전경. 초가지붕 민가들 뒤로 본관·생활관·과학관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서울시 제공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배화여고 과학관과 본관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보존·관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울시는 15일 종로구 필운대로 1길 배화여고 교내 과학관과 본관 건물에 대한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서를 이달 안에 문화재청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화여고 두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말 서울시 문화재위원들이 현장 조사를 마쳤다”면서 “문화재청 심의를 거쳐 내년 1월쯤 정식 등록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배화여고 과학관은 1915년 2층으로 건축해 1922년 2개층을 증축했다. 현재 지상 4층, 연면적 968㎡ 규모다. 본관은 1926년 신축해 1978년 중수해 지상 4층, 연면적 2138㎡ 규모의 건물이다. 서울시 문화재위원 조사 결과 두 건물은 서울의 근대 신식 학교 건물의 대표적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식 벽돌쌓기를 적용한 건물로 근대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도 받았다. 앞서 2004년 배화여고 생활관(1916년 신축)이 등록문화재 제93호로 등록됐다.

배화여고 과학관의 전경. 이 건물은 1922년 2개층을 증축해 지상 4층, 연면적 968㎡ 규모다. 영국식 벽돌쌓기를 적용한 서울의 대표적인 근대 신식 학교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 제공

배화여고 과학관의 전경. 이 건물은 1922년 2개층을 증축해 지상 4층, 연면적 968㎡ 규모다. 영국식 벽돌쌓기를 적용한 서울의 대표적인 근대 신식 학교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 제공

배화여고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도 의미 있는 공간이다.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은 1910년부터 1918 년까지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에게 조선의 역사와 지리 등을 가르쳤다. 특히 무궁화·태극기 자수 보급, 애국가사 보급 등을 통해 애국·독립사상을 고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차미리사 선생도 1912년부터 1920년까지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으며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배화여학교 학생 다수가 선생의 영향을 받아 만세운동을 벌였다.

지난해 6월 배화학원은 배화여대 기숙사 신축 등을 위해 과학관 철거 계획을 세웠으나 동문과 학부모, 학생들이 ‘100년 역사 배화과학관 지킴이’를 결성해 철거에 맞섰다. 이에 배화학원은 지난해 9월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서울시와 등록문화재 등록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학원 측은 지난 9일 이사장 보고를 거쳤으며 곧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서를 서울시에 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등록문화재란 1,876년 개항 이후~6·25전쟁 전후 시기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아 등록·관리하는 문화재를 가리킨다. 등록문화재는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또는 관할 시·도지사 권고에 따라 자치구 및 시·도에 신청하면 시·도가 현장조사를 벌인 뒤 문화재청에 신청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 건축물 수리 등에 제약이 따르지만 정부로부터 보수·정비 비용 지원 및 세제 혜택 등을 받게 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52345035&code=620101#csidx4bc259891619308aec501a7836f0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