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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도 채광권 지도’에 2016년 직인…그들의 포석은 섬뜩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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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6-08-16 16:34 조회 25,545

ㆍ독도 영유권 논란의 진앙지, 일본 시마네현 ‘오키제도’를 가다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고카이촌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역사관’에 전시된 독도 광물 채광권 지도에 지난 3월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흰색 네모). 일본 정부가 여전히 독도의 광물권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주강현 교수 제공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고카이촌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역사관’에 전시된 독도 광물 채광권 지도에 지난 3월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흰색 네모). 일본 정부가 여전히 독도의 광물권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주강현 교수 제공

해양문명사가이자 민속학자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61·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가 해방 71주년을 맞아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역사학자 등과 함께 일본 오키제도 학술답사에 나섰다. 시마네현의 오키제도는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땅으로, 독도 영유권 논란의 ‘진앙지’로 평가받는다. 주 교수의 생생한 오키제도 르포를 싣는다.

주강현 | 제주대 석좌교수

주강현 | 제주대 석좌교수

광복 71주년. 여전히 한·일관계는 어수선하다. 독도 문제도 그러하다. 피서 대신에 환동해 학술기행에 나섰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오키섬. ‘지피지기 백전백승’ 따위의 험악한 선동적 단어를 떠올릴 필요 없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독도 문제의 진앙지’인 시마네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그 동네에 대해 무관심, 혹은 무지한 것 아닐까.

일본의 모든 신은 신들의 본향과도 같은 시마네현 이즈모(出雲)로 모인다. 이즈모는 일본 고대문화의 발상지이자 신화의 고장이다. 주변에 거대한 고분과 함께 일본의 모든 신이 모이는 곳이라는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가 있다. 한반도 도래인의 정착지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 그 도래인 집성촌이 오늘에는 독도 문제의 진앙지 같은 곳이 되었다.

육지의 항구 사카이미나토에서 2시간이면 오키제도에 닿는다. 관문인 사이고항이 남다르게 커졌다. 관광객도 제법 있다. 예전에 서 있던 ‘다케시마(독도)를 반환하라’던 탑은 사라졌다. 오로지 관광만을 강조하는 섬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오키섬이 유네스코지질공원으로 인정받은 덕분에 지질자료관까지 생겨났다.

눈에 띄는 유물이 있다. 독도에서 사라져간 포유동물 ‘강치’(토종 바다사자의 일종)의 벗긴 가죽, 강치 어금니로 만든 반지, 가죽으로 만든 트렁크다. 생물종 다양성까지 포괄하는 지질공원자료관 어디에도 강치의 멸종을 안타까워하는 안내판은 없다. 그저 트렁크와 반지와 가죽만이 누워 있을 뿐.

택시를 잡았다. 우리 돈 7만여원을 치르고 오키향토관에 닿았다. 작지만 기품 있는 메이지시대 건축물인데 본디 사이고항에서 옮겨왔다. 향토자료관 1층 독도자료실의 사진과 문헌사료 등은 사실상 일본 독도반환운동의 담보물 같은 것이다. 한국전쟁의 어수선한 틈을 노려 독도에 상륙한 고카이촌 주민들의 사진이 즐비하게 붙어 있다. 최북단으로 올라가면 고카이촌이 나온다. 1904년 오키섬의 주민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가 독도에서 강치 조업이 가능하도록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 편입 및 대여를 청원했다. 일본은 1905년 1월28일 각료회의에서 독도를 정식으로 다케시마로 명명하고,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로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카이촌에서는 네 가문이 독도 출어를 했는데, 그중 하나인 야와타(八幡) 가문의 후손을 만났다. 당시에 잡아들이던 강치, 전복, 다시마 따위의 추억은 오랜 역사적 유전자 같은 구전 전승체를 구성하며 이어지는 중이다. 도로의 맨홀 뚜껑에조차 강치가 각인돼 있다.

놀라운 사실은 아직도 독도 어장에 관한 법적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다. 훗날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적 논란에 대비한 지역거점의 포석일 것이다. 고카이촌 사람들은 조상의 독도와의 연관성을 매개로 여전히 독도 출어의 꿈이 익어가길 기다리는 중이다.

예전에 없던 ‘다케시마역사관’도 문을 열었다. 이 자그마한 마을에 역사관이 들어서다니! 아베 정권의 독도를 향한 관심의 깊이를 방증한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깜짝 놀랐다. ‘평성 28년’(2016년) 직인이 선명한 독도 채광권 지도를 전시하고 있어서다. 애초에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광물권을 등기화했는데 올해, 즉 지금 현재까지 여전히 독도에 대한 광물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의 채광권 지도다. 우리 입장에서는 엄연히 외교적으로 항의해야 할 사안이다.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한 고카이촌 사람들.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한 고카이촌 사람들.

독도 문제의 진앙지이기는 해도 고카이촌은 평화로운 어촌이다. 특히 해식동굴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선사시대 이래 흑요석 산지로 유명하다. 고카이촌에서 북서로 향하면 독도와 울릉도에 이른다.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눈으로 보이나,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일상적 가시권에 들어오는 울릉도와 들어오지 않는 오키섬의 간극은 독도를 인지하는 역사적·생활사적 근거 제시에서 매우 소중한 대목이다. 독도 목측과 장소의 정치학이 성립되는 지점이다.

어쩌면 우리가 수동적·방어적 해양관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일본은 능동적·공격적 해양관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오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반성을 요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흘러간 역사에서 배움을 청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큰 해양분쟁의 격랑에 휘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메이지 이후 태평양시대가 열리면서 환동해(일본에는 일본해) ‘우라니혼’(동해 쪽 일본 지역)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하던 무역선단 기타마에부네(北前船)가 홋카이도로부터 오사카까지 넘나들던 시절에는 오키섬도 잘나갔다. 지금은 쇠락한 그들에게 ‘드넓은 독도 어장을 다시 확보하자’는 선동은 매우 유혹적이다. 오키의 숙소 주인장은 불쑥 찾아온 ‘조선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 흔한 ‘스미마셍’ 따위의 언사도 없이 사무적으로 ‘뭐하러 왔냐’는 태도였다. 그저 답사객의 느낌이었을까.

고카이촌 도로 맨홀 뚜껑에 새겨진 강치.

고카이촌 도로 맨홀 뚜껑에 새겨진 강치.

오키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사카이미나토는 아주 특이한 항구다. 일찍이 원산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북방무역의 전진기지로 해빙의 그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북방루트의 본산인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시마네현에서 울릉도까지 정기연락선이 다녔다. 1940년을 기준으로, 한반도는 시마네현과 항공기로도 연결되고 있었다. ‘도쿄와 서울 간의 요나고(米子)를 경유하는 5시간 걸리는 직항로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요나고공항과 서울이 직항으로 연결됨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주목할 일이다. 통신시설까지 시마네현에서 울릉도로 해저전선을 통해 직결되었다. 왜 시마네 사람들이 독도에 큰 관심을 쏟아붓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이즈모타이샤의 신을 모셔다가 도동 신사에 모셨다. 신앙적으로까지 완벽한 구조를 갖춘 것이다. 시마네현 고시에 입각한 1905년의 독도 편입까지 포함한다면 시마네 사람들의 독도·울릉도 관심은 당연하기도 하다.

사카이미나토에서 40분 거리의 마쓰에시 ‘다케시마자료관’으로 향했다. 자료관은 시마네 현청사 바로 옆 건물로 현 총무과 소속이다. 2층에 들어서니 독도 관련 지도와 선전 포스터, 일어·중국어·한국어·영어 등으로 준비된 팸플릿, 독도 관련 일본어와 한국어 자료가 서가에 갖춰져 있다. 마침 스기하라 유미코 작가의 그림책 원화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강치가 살던 섬-말로 전해져온 풍요의 섬 다케시마’ 그림책이다. 초등교과서 이외에 초등생과 취학 전 아동을 위한 그림책이다. 조금은 섬뜩하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까지 국민국가의 팽창적 영토관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설득하다니….

독도 반환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다케시마역사관’ 건물.

독도 반환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다케시마역사관’ 건물.

엄밀하게 역사를 통시적으로 조망한다면 오늘날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권은 ‘만들어진 역사’일 뿐이다. 대마도와 공모하여 울릉도를 무단으로 침략하려 했던 사실, 독도에서의 불법적·야만적 바다사자 학살, 러일전쟁 이후 대륙 침략의 필요에 의한 통신·교통시설의 완비, 천혜의 울릉도·독도 어장으로의 수탈적 이주어촌, 울릉도 신사를 비롯한 식민통치의 시스템 구축 등이 야기한 19~20세기적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의 결과물이다.

‘만들어진 역사’가 현실로 둔갑해 세뇌시키고, 착각은 신념으로 굳어져 국제적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와 문명교류의 직접적 대상인 시마네현 일대가 분란의 화점(火點)으로 부각되면서 불행하게도 그 유서 깊은 ‘신들의 도시’는 독도 침탈의 ‘메카’로 전락하고 있다. 시마네현은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일본에 독도를 강제편입시켰음을 주장하며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 것이다. 시마네현 사이트에 들어가면,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섬’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진을 싣고 있다. ‘다케시마에서의 강치 조업’이란 제목으로 3명의 어민이 강치를 잡고 있는 잔인한 풍경이다. 생물종 다양성의 소멸에 관한 반성은 단 한 줄도 없이, 강치 그림책이 만들어져 어린이들에게 배포되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요나고공항에서 인천까지 딱 1시간10분 걸렸다. 가깝고도 먼 일본, 멀면서도 가까운 일본. 역사의 물굽이 속에서 환동해와 독도는 출렁이고 있다. 환동해를 평화 공존의 바다로 바꿀 지혜를 마련하는 일, 양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일이다. 누가 저 바다를 잠잠하게 할 것인가. 주체적인 해양력 없이 ‘평화의 바다’는 요원할 것이다. 평화조차도 전쟁만큼이나 주체적인 힘이 갖추어질 때 가능한 것이니.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52148005&code=960201#csidx6ff9863d9ac2949b1bc94e8e28468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