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전 前 광복회장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재개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개관 테이프를 끊으면서 감회가 깊었다. 나는 이제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몸이지만 그날만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기꺼이 행사에 참석했고, 그 건물의 비좁은 계단을 3층 끝까지 다 올라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김구 선생의 단심(丹心)과 나의 청춘이 거기 숨죽이고 있었다. '아, 여기가 대한민국의 원점이구나!' 그동안 우리 현대사가 무수히 많은 곡절과 굽이를 건넜지만 마침내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前文)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게 만든 바로 그 현장에 섰던 것이다.
임정 청사의 곳곳에서 먼저 간 선배 지사(志士)들의 체취가 맡아지고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장을 둘러보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착잡해졌다. '왜 서울에서는 그 체취를 맡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곱게 단장한 상하이 임정 청사의 복도를 걷는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재개관식에 이어 교민 간담회가 열렸고, 건의 사항들에 대해 박 대통령은 선처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대통령 바로 앞자리에 앉은 나의 심중(心中)에는 한마디가 맴돌면서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통령님, 임시정부 기념관의 개관식 테이프를 서울에서도 끊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나는 그날 미처 하지 못했던 이 한마디를 이제라도 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이 동북아 질서의 향후 전개에 큰 족적으로 남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거기에 덧붙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토대를 기억하며 늘 반추할 수 있도록 서울 한복판에 임시정부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그것 역시 헌법 전문이 다짐하고 있는 것처럼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튼튼한 출발점이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의 원점을 기억하는 일과 거기서 자라난 새로운 가지가 세계로 뻗어가는 일은 결코 둘이 아니다. 원점은 뿌리이기도 하고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잘잘못을 가릴지언정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대륙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념관과 기념물이 서 있다. 상하이·충칭·항저우·창사 등지에는 기념관이 있고, 워싱턴과 파리에는 동상·기념동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선열(先烈)들의 흔적을 살피고 느낄 수 있는데 정작 그들의 피 값으로 선 이 나라의 수도에서는 왜 그런 일이 불가능할까? 그건 차라리 이율배반이다.
이제 선열들의 끝자락에 서서 한마디 하고 싶다. 서울의 한복판 모든 시민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 예컨대 남산의 백범광장이나 서대문형무소 선열들의 피어린 흔적 위에 임시정부 기념관이 서야 한다. 그 자리에는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됐던 3·1운동 100주년 기념탑도 함께 서야 한다. 그 100주년인 2019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박 대통령께 못다 한 이야기를 이제야 건넨다. "임기 중에 이 문제를 해결해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주제넘게 덧붙인다면 저의 생전에 이 일의 완성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