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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대 역사는 상당한 시일 지나야 쓸 수 있다는 통념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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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2-08-30 09:39 조회 19,100
‘역사비평’ 100호 발간 … 반공·친일세력 이데올로기 비판

“역사문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던 시절(1986년)은 지적 흥,분과 감격의 시기이기도 했다. 비역사학계가 많았지만, 학계의 ‘지사’들이 강연자로 참여한 역사문제연구소의 한국사 교실은 강의실을 꽉 채운, 때로는 복도까지 메운 청중들로 열기가 넘쳐흘렀다. 역사비평에 대해서도 열기가 있었다. 민족·분단 문제 특집, 북과 관련된 특집, 극우반공체제를 비판한 논문 등 많은 글들이 화제가 되었다. 내 서가에 역비가 꽂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비역사학도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역사비평’의 초대 주간을 맡은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의 회고다. 1987년 부정기간행물로 첫호를 낸 계간 ‘역사비평’이 이달 말 출간되는 가을호로 100호를 맞는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출판사업으로 출발한 역사비평은 창간호부터 “역사 연구의 대중화와 새로운 역사인식 정립을 위한 대중 역사지”를 표방했다. 역사를 전문으로 다루면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잡지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창간호 특집으로 ‘미군정의 성격과 민족문제’를 다룬 역사비평은 식민지·분단·독재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에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민족경제론’을 펼친 고 박현채 조선대 교수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필진들이 참여했고, 빨치산 투쟁과 북한 정권의 성립 과정 등 금기시됐던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비평은 한국 역사학계의 진보적 문제의식을 집대성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보담론을 이끌어왔다고 평가된다. 6월항쟁과 뒤이은 노동자대투쟁의 열기 아래서 태어난 역사비평은 태생적으로 현실비판, 현실참여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역사발전의 올바른 방향 제시’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이라는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의식과도 방향을 같이 했다. ‘한국사회 5대 권력-그 역사와 성격’(77호), ‘병영국가에서 경영국가로, 대안은 있는가?’(84호), ‘대학의 서열화-기업화, 서열화, 지성의 몰락’(92호)을 특집으로 다루는 등 한국사회에서 현재 드러난 문제들이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됐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서중석 교수는 100호에 실은 글에서 “(역사비평의 현실참여는) 50년 동안 민을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반공이데올로기, 수구냉전의식을 해체하기 위한 작,업이자 극우반공세력 또는 친일분단세력을 정신적 이념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작,업”이라며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비평은 이승만·박정희 살리기에 열 올리는 수구냉전세력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 교수가 지적했듯 창간 당시의 열기에 비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고, 특정 지배권력의 정당화에 쓰이는 역사연구가 팽창한데다, 지금 현재 역사연구를 하는 의미마저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00호를 맞아 원로와 신진을 망라한 국내·외 역사학자 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그 같은 우려가 묻어난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는 “이 시대의 역사가는 더 이상 계몽적, 해방적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디지털 혁명 시대에 대중은 역사를 ‘이야기’로 소비하고, 역사는 오락성이 강화된 문화상품에 가깝다”고 밝혔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는 사회사, 문화사 분야를 제외하면 매우 답답한 지경에 빠진 듯하다”고 밝혔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설문 응답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인 것처럼 보인다. 강 교수는 일단 “당대의 역사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쓸 수 있다”는 통념을 깨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국내에서 우리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현실적으로 그들의 당대사요, 일제강점의 역사인 근현대사를 연구할 수도 또 서술할 수도 없었다”며 “그들은 그것을 ‘변명’하면서 당대 역사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써야 하며, 그래야 객관성 있는 서술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당대사인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했고 <조선통사> 등을 써냈다”며 “해방 후 어느 한 정권에 관한 역사를 쓸 경우 그 정권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면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발전시켰는가, 또는 그것을 얼마나 억압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서 객관적으로 쓰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연구과제는 일제강점기의 경제사 문제”라며 “이 문제를 대체로 경제학자들이 담당했기 때문에 그 시기의 역사적 성격보다는 경제논리 및 수치증가 중심의 연구방법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한제국 멸망의 근거를 ‘합방’ 조약 체결에다 두면 이후 일본의 조선지배는 합법적인 것이 되고 그 통치에 저항한 조선 사람들의 모든 독립운동은 불법행위가 된다”며 “일본 쪽 자료만으로도 약 14만명이 참전해서 2만명 이상이 전사한 의병전쟁의 패배에 대한제국 멸망의 근거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주제? 그것은 어떻게 하면 시간강사가 방학 동안 생존할 수 있는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한 젊은 연구자의 응답이 보여주듯 학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것은 한국연구재단 학술지로 등재되면서 대중과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역사비평’의 문제의식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병욱 역사비평 주간은 “여러 격려와 질책을 등대삼아 ‘눈 밝은 새처럼 앞서’ 가며 ‘시대상황에 맞는 정신’을 기르는 잡지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