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 만세시위 앞장선 또 다른 ‘유관순’들 -한겨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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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28&aid=000…[10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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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돋보인 여성 활약 선언서 배포, 시위 주도 권애라 일반 대중 참여 기폭제로 작용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3·1운동은 학생혁명이었다. 3월1일 탑골공원 집회를 주도한 것도, 5일 남대문역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도, 전국 각지에서 독립의 깃발을 치켜들고 앞장선 것도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더욱 주목받은 것은 ‘여학생’의 활약이었다. 여성이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나타난 것이다. 일본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은 “3월1일 오후 2시경 조선 경성에 일대 소동이 야기되었다. 이 일은 중등학교 이상의 조선인 학생 전부가 결속하고 이에 다수의 여학생도 참가하여 일대를 조직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운동의 돌파구를 연 인물은 유관순만이 아니었다. 2월28일, 서울에서 전달된 독립선언서 200장이 개성 남부교회에 도착했지만 교회 관계자들은 이를 배포하지 않고 숨겼다. 이에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였던 권애라가 전도사인 어윤희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건네받아 이튿날 개성 시내에 뿌렸다. 이 두 사람은 이튿날 호수돈여학교 기도실에서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고 커튼을 잘라 태극기를 만들었다. 마침내 3일 그들은 기도회를 마치고 찬송가를 부르며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부산 최초의 만세시위도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몫이었다. 특히 3·1운동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보았던 윤치호조차 “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이감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조선인들의 가슴속에 증오와 분노의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일기장에 적었다. 여학생들의 참여와 고난은 사람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모은 기폭제였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참고문헌 김정인, <오늘과 마주한 3·1운동>(책과함께·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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