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요미탄촌에 건립된 ‘한의 비석’ 비문.
▶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제에 의해 군대와 공장, 광산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추모와 기념의 공간이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재일조선인들의 소중한 노력으로 그나마 묻힐 뻔했던 역사적 사실이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정부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광복절 72주년을 앞두고 강제징용의 아픈 기억이 서린 현장을 찾았다.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 마을. 키 작은 아열대 나무들로 둘러쳐진 주택가 한쪽 빈터에 비석 하나가 일행을 맞이했다. 이름하여 ‘한의 비석’. 골목으로 이어진 구릉을 따라 오르면 만나는 50평 남짓한 공간이다. 조선에서 끌려온 청년과 소녀의 고통을 형상화한 부조와 비석이 새겨져 있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의미는 남다르다.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직접 고발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일본 내부에서 터져나온 기억이자 울림이다. 한의 비석이 세워진 건 2005년 5월.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 전역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았다. 제막식에는 100여명이 참석했다. 일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조선에서 끌려온 청년과 소녀의 고통을 형상화한 요미탄촌의 부조와 ‘한의 비석’.
천장과 벽면 곳곳에 남은 수작업의 흔적
미야코지마 아리랑비 조성에 적극 참여했던 주민 우에사토 기요미씨는 과거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할머니한테 생생하게 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설명해줬다. 슬픔과 고통의 현장이었다.” 오키나와 전체로 일본군 위안소는 130곳가량. 이 중 50개소가 조선인 위안소다. 미야코지마에는 우에노 지역을 비롯해 모두 17개소가 운영됐다.
오키나와 요미탄촌 ‘한의 비석’
미야코지마엔 ‘아리랑비’ 들어서
다이빙 명소 알려진 도카시키지마
해군 가미카제 비밀기지 있던 곳
지자체·교원노조 등 자발적 모금
재일한국인과 국내 민간단체 관심
정부 주도 진상규명 사실상 중단
실태파악 부족, 관련 시설 방치도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미야코지마에는 미야코지마 주민들을 비롯해 한국의 민간단체가 힘을 보태 2008년 9월 아리랑비를 건립했다. 그 옆엔 ‘희망의 나무’도 심었다.
일본군 37연대의 최후 방어선으로, 바다로 들어오는 미군을 상대로 일본이 최후 결전을 준비했던 미야코지마 터널의 흔적.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군사시설 건설에 대거 투입됐다.
조선 청년 6000여명이 지하터널 공사에 동원된 혼슈 중부 나가노현 마쓰시로대본영 터에 세워진 마쓰시로대본영 추모비.
하지만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과 달리, 정작 우리 정부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일본 곳곳에서 열리는 추모행사만 해도 그렇다. 주일대사관 한 관계자는 “대사관 차원에서 그런 행사에 참가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총영사관에서는 개별적으로 참여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정작 일본 내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실태 파악도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 역시 “일본 현지의 강제징용 현장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거나 자료를 수집하도록 본국 정부로부터 별도 지침을 받은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 정부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04년 11월10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고, 특별법이 제정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2015년 12월31일자로 이 조직이 폐지돼버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최대의 대일 외교참사라 평가받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사흘 뒤의 일이다.
현지 실태조사 보고서는 5건뿐
그나마 지난 10여년간의 활동도 충분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차원의 일제강제동원 진상규명 사업은 주로 희생자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상대적으로 진상규명 작업의 비중은 턱없이 낮았다. 10년 동안 정부가 펴낸 강제동원 관련 보고서는 63건. 그나마 일본 현지를 직접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는 5건에 불과하다. 오키나와 등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는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10년 넘게 꾸려온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외교부 쪽에서 우리 쪽에 자료를 요청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관련 부처의 핵심 자료조차 파악하지 않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중요한 협상에 나선 셈이다.
일본 곳곳에 남아 있는 아픈 상처의 현장들. 강제징용의 희생자를 기리고 잘못된 과거를 후대에 일깨우자는 일본 시민들의 자취는 정작 우리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피해자가 끝까지 기억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는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과 민간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아픈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하기 힘들다. 광복절 72주년을 앞두고, 일본 곳곳에 들어서 있는 기억과 추모의 공간들은 다시 한번 우리들의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