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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국을 관망(觀望)하는 공론자에게 경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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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9-11-19 15:34 조회 10,912

  독립 중흥의 사업은 우리 조선 혼의 정화(精華)로서 천지의 기운(氣運)을 만난[際會] 것이다. 따라서 자각과 정신력에 의해 우리 고유의 본령(本領)을 발휘할 따름이지 어찌 타방, 타인의 원조를 바랄 것인가? 우리 2천만의 애국 정신은 천지의 진리에 따라 어두워지거나 밝아지고[晦明] 시세의 변화에 따라서 서로 늘거나 주는[增減]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행동에서 시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으므로 혹은 10년이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인내하고 굴욕을 감수했은 즉, 한번 이를 발휘하면 삼천리의 대지가 일시에 우레 치듯 놀라는[震驚] 듯함은 즉 5천년 이래 엎드려 있던(伏在) 우리 조선의 혼이 발휘된 정화 때문이라. 어찌 이를 구시대의 작은 그림자[片影]와 신사조의 여파라 하겠는가? 요컨대 천하의 기운에 적응하여 세계 인류가 함께 돌아가는[同歸] 데에 있을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민력(民力)은 어둡고 어리석으며[暗愚] 열강의 후원은 빈약하다 하며, 일본은 강경한 체도(體度)를 쥐고[把持] 있으며 대국(大局)의 기세는 혼돈하다 한다. 더구나 강화회의는 공평을 결(缺)하고 산동(山東) 문제 역시 불행으로 끝났으며 어느 것이나 우리 국가를 위해 불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위 민력이란 과연 무엇인가? 대포, 군함의 폭력은 본래 우리 민족이 오히려 쓰지 않는 바일 뿐만 아니라 오늘 이후의 세계 평화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존귀하게 여기는 바는 우리 민족 고유의 보국 정신을 발휘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몇 치[方寸]의 흉중(胸中)이 능히 천지의 대기(大機)를 돌이킬[旋轉] 수 있으므로 2천만의 붉은 정성[丹 誠]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삼천리 대지의 중흥을 기획하는 데에 무엇인가 없을 소냐! 선황제께서 일사보국(一死報國)하심으로써 천하의 정치[萬機]가 모두 활약했다. 우리 대표자는 한 마디 호령[一聲之下]에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임이 증명되고도 남는다. 특히 열국은 3월 이래 우리 민족의 독립을 찬조하여 공의 (公議)를 결정한 후 이를 강화 회의에 제안하여 이미 통과를 보았다. 그렇다 면 각국의 원조는 더욱 더 그 기회를 촉진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일본을 정복, 토벌[征討]해서 쌓인 원한[積憤]을 푼 후에 진정한 원조를 허용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오늘은 그 시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은 모름지기 자작 (自作), 자성(自成)의 본(本)을 길러 그 성숙된 과실(果實)을 기다릴 뿐이다. 또한 의당 이수(理數)의 회전에 맡겨 형세의 필지(必至)를 기해 모든 민족을 구제함과 동시에 우리 조선 독립의 날을 구가해야 한다. 어찌 구구하게 바깥 원조[外援]의 유무를 관계할 것인가. 일본은 천운을 명찰(明察)하고 기운을 회전하는 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이(利)만을 다투어 그 포악을 극함은 천리를 스스로 손상[自損]하여 헛되이 그 죄악을 증진할 따름이다.

 

  강화 회의에서는 때로 공도가 아닌 것[非公道]의 결정이 없지 않다 할지라도 후일 스스로 정의로 돌아와[反正] 선으로 옮기는[遷善] 날이 있을 것이다. 무릇 연맹 도의의 정신은 원래 불멸하는 것이다. 진정한 공도(公道)가 아니면 진정한 평화는 없다. 그리고 세계에는 반드시 인류를 보전할 대동(大同) 평화의 날이 있을 것이다. 민족 자결의 형세는 쉼이 없다[不休]. 대국이 소국을 보호하는 것은 소국을 위해서가 아니고 소국의 안녕에 힘입어 그 자국의 평화를 기(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국은 공도를 버리고[放棄] 일본의 포악을 보조할 리가 없다. 산동(山東)에 관한 불행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세력을 증진하는 것도 아니다. 필경은 지나 당사자가 주저한 과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산동 사건의 극복은 후일 그들 4억 민(民)의 활동 여하로 결정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독립 운동의 권위에 조금도 관련되는 바가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쇠미(衰微)를 기다려 우리의 독립을 꾀하려 하면 천백 년[千百載]을 지난다 해도 반드시 독립의 날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간난(艱難)을 피해 앉아서 멸망을 기다림과 같은 일은 국민으로서 생각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독립을 선언한 후 이제 겨우 2개월이 경과했으며 강화 회의는 이미 종국을 고했으나 독립의 실권은 막막[渺漠]해서 잡을[捕握] 수가 없으니 이는 소기(所期)의 대사가 잘못된 계산[違算]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쌓인 원한의 나머지 기대하는 정으로 보아서는 깊이 이를 탓할 바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상의 이치[事機]에는 그 순서가 있는 법이니 우리들이 기대하는 공과(功果)는 원래 천지의 공리와 함께 자연히 실현되는 것이다. 이미 세계 공도(公道)의 성원을 얻은 이상 오직 그 시기 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니, 저 유대인이 하늘의 도움[天祐]을 기대하고 벨지움이 회복을 봄과 같이 이 역시 필연의 이치이다. 그렇다. 의당 용기를 격려해서 하늘의 이치[天機]의 돌아감[旋轉]을 관측할지어다. 어찌 2개월의 단시 일로써 우리의 영구한 홍업(鴻業)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금일의 형세로 독립을 기대하는 것은 헛되이 생민(生民)의 참화(慘害)를 부를 뿐이니 모름지기 시세의 추이를 기다려 대국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하나, 슬프다[噫]!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지금 이 때는 어느 때인가? 우리 민족의 존망이 판정되는 시기이다. 분발하면 능히 자 유의 경지에 살며 무궁한 낙을 누릴 것이나, 주저하면 반드시 억만 길[億萬仞]의 불멸(不滅) 왜화(倭火)에로 추락할 뿐이다. 이번(此際)에는 촌시. 촌보의 방심을 허락하지 않으며 사태 형세의 대국을 모두 우리의 결심에 따라 정해지는 바이므로, 내 스스로 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늘이 어찌 나를 도울 것 이며 남이 어찌 또한 나를 도울 것인가?

 

  목하(目下)는 국민 외교의 시대이므로 이를 사실에서 구하고 이를 여론에 비추어 공의(公議)를 결정해야 한다. 각국은 대표가 앞장선 후에야 반드시 전국민의 분기(奮起)가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각국의 쟁권(爭權)의 우열은 그 국민의 자조(自助)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바가 많다. 이와 같은 사실은 비록 어리석은 백성[愚夫]이라 할지라도 이미 알고 있는 실증이 있는데 무릇 우리 중류(中流) 사회의 제씨는 어리석게도[蠢然] 아무런 감각도 없음을 어찌하랴.

돌이켜 보건대 우리가 독립을 선언한 이래 우리 국민의 활동은 어떠한가? 과연 능히 공도(公道)를 주지(主持)하고 정의를 선양할 수 있으며 눈앞에 세계를 바라보면서 겨드랑이[腋下]에 대국(大局)을 끼고 열강의 국민과 대치(對峙)하여 만용(蠻勇)한 일본의 커다란 분노[大赫怒]를 분쇄할 수 있겠는가? 우리 2천만 인의 동포가 모름지기 조선 혼의 훌륭한 재능[良能]을 불러 일으키고[喚發] 천기의 작은 움직임[微動]에 응험(應驗)해서 생사의 이해[利鈍]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왜병 앞에 용감히 맞서기[勇往]를 무인지경 가듯 한다면 누가 그 장렬함을 존경하며 바라보지[欽仰] 않겠는가? 이와 같은 행동은 참으로 우리 단군의 유족임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이다.

 

  아깝게도 모든 국민의 단결을 형성해서 세계 각국의 외교 무대[場裡]에 들이 치지[馳驅] 못함은 그 죄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지식 계급 중의 유력한 제씨들이 바라만 보면서 헛된 얘기[觀望空談]를 농(弄)해 국민 사무에 주의하지 않으니 이는 죄가 아닐 수 없다. 혹은 선배가 혹은 동배(同輩)가 국가를 위하여 신명을 던져 구사에 일생을 기하면서 해외로 분주(奔走)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대수롭지 않은[尋常] 다반사로 치고 앉아 성공의 여하를 논하는 따위는 그 양심에 부끄럽지 아니한가? 공분(共憤)에 궐기하고 도의에 용진(勇進)한 현자양손(賢子良孫)을 가리켜 불량 행위라 하고 이들을 왜노(倭奴)의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부조(父祖)의 마음인가? 각지의 동포는 가산을 왜노의 불에 태워 버리고[燒棄] 부형을 왜노의 독 묻은 칼[毒刃]에 쓰러지게 하고, 혼자 다시 독립을 절규하여 드디어 왜노의 옥에 투옥되는 우리 동족의 참상을 목격하면서도 추호도 구제의 도(道)를 다하지 않고 도리어 경거망동으로써 이를 책망[誅責]하는 것은 실로 왜노의 심술 이하에 속하는 인비인(人非人)이다. 이 천운을 극복하려는 민족 공분(共憤)의 날에 홀로 부호(富豪)를 자랑하고, 안일을 마음대로[擅] 하며, 국가의 복리[國祉]를 해치고, 민족의 화[民禍]를 투(妬)함에 이르러서는 그 죄가 10 년 전의 매국노에 못하지 않은 것이다. 500년 이래 국조(國朝)의 큰 은혜[鴻恩]에 힘입은 몸으로서 초야의 농부 [田父野人]의 충용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무릇 가슴속[胸中]에 일 점의 광명이라도 있는 자라면 감히 이를 모방하지 못할지니라. 4천년 예의의 종족(宗 族)으로서 이 강토를 타인의 실가(室家)라 하지 말라.

 

  원컨대 여러분은 이를 맹성(猛省)하여 천재일우의 행운을 잃지 말고 협력 일치의 주저함을 조금도 용납치 말라. 일각이 늦으면 일각의 해가 있고, 한 가 지 의심[一疑]이 생기면 백마(百魔)가 나타날 것이니, 오직 성심(誠心)의 일 관을 기(期)할 뿐이다. 의리에 안(安)하면 능히 대용(大勇)이 될 수 있고 공도(公道)에 분발하면 능히 하늘을 움직일 수 있으니, 만약 능히 하늘을 움직일 수 있을진대 어찌 왜노의 만용을 두려워할 것인가? 오호라, 제씨여! 저들은 의리도 없고 신의도 없으며[無義無信], 욕심이 많고 속임이 많아[多貪多詐] 이미 대국민(大國民)의 도량이 없고 침략을 능사로 하여 지난날[往古]에 계발(啓發)을 받은 옛 은혜[舊恩]를 생각하지 않고 히데요시(秀吉) 이후 3백년 이래 우리의 국토[我土]를 훔치는[僣窃] 등, 그 분한(憤恨)에는 상하가 있을 수 없는 바이다. 특히 최근 10년간에 있어서의 학정의 자취는 우리 민족을 박멸하지 않고서는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생각건대 반드시 제씨의 심간(心肝)에 명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2천만 동포는 정의, 인도(人道)의 의병을 일으켜 우리의 분노를 나타냄과 동시에 우리의 권위를 발양하고 차라리 오랑캐의 칼[蠻劒] 아래 옥쇄(玉碎)함을 광영(光榮)으로 할 따름이라.

 

건국 4252년 5월 20일 조선민족대동단 민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