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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는 진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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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

등록일 19-11-19 11:47 조회 6,203

 

  조선민족대동단은 정의와 인도를 기초로 하여 영원한 평화를 확립하려는 만국강화회의에 서(書)를 제출하여 우리 2천만 민중의 사정[情]을 설명[陳] 하는 바이다. 생각건대 우리 조선은 단군 이래 완전한 자유 민족으로서 4,20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졌으며, 실로 세계의 유수한 최고의 문명을 누리고 있다. 비록 구 시대에는 조선 왕실과 중국 황실(皇室)간에 예속적인 관계가 있었다 하나, 이로 인하여 민족의 자유주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친 바가 없었다. 조선은 의연 (毅然)히 조선족의 조선으로서 외국의 지배를 받을 바가 아니다. 침략주의로써 발달한 일본은 최초로부터 동양 공존의 성의가 없으며, 표면으로는 동양 평화를 가장하여 음으로는 동양 병탄(倂呑)의 계획을 세워 조선을 지도한다는 구실로 간섭의 길을 열고, 정부를 교란하고 우리 황후를 사살하여 침략의 발걸음[地步]을 확립했다.

 

  청일전쟁(淸日戰爭)의 결과에 따라 일본은 1895년에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제국과 같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고 이를 확실히 보존할 것을 협약했었다. 한국의 독립 보전과 동양 평화의 유지를 위한 1904년의 일로전쟁의 개전에 즈음하여 한일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한국은 군정, 재정 기타 제반의 원조에 진력(盡力)했고, 그 전쟁의 종국에 이르러서는 일-러 강화 회의를 열었다. 일본은 재래의 야심을 바로 폭로하여 동맹인 우리 한국이 회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국에 대하여 우월권을 획득[獲取]하였다.

 

  또한 러일전쟁에 출동한 병력 전부로써 우리 나라를 위협하고 황제와 정부를 협박했으며, 국력을 충실히 하여 독립을 얻을 때까지 라는 구실로 속여 보호조약을 압제, 체결했으며, 황제께서 단연 이를 비준하지 않게 되자 군대를 몰아 입궐하여 대신을 가두고 인장을 강탈하여 더러운 손으로 서류를 만들어 날인 함으로써 압제적 조약을 체결한 후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奪去] 열강과 직접 교통의 길을 끊었으며, 우리 관민의 반항을 무력으로 진압[武壓]하여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우리 황제께서는 이를 변명키 위해 해아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시킨 것은 열강이 이미 승인하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저들은 우리의 내정을 속박하고, “징병령을 실시할 때까지”라는 구실로 속여 군대를 해산시키고 민간의 무기까지 압수했으며, “상당한 시기까지”라는 구실로 속여 사법권(司法權)을 빼앗았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은 군대와 헌병, 경찰을 각지에 배치하고 우리 민족으로서는 전혀 무저항자가 되게 했으며, 그 후로는 애국의 감상이 강한 광무황제(光武皇帝)를 협박하여 양위시키고 덕수궁에 가두었으며[廢處], 충성되고 어진 대신을 몰아내고 일본이 매수한 반역적인 신하[叛臣賊子]들로써 소위 합병 내각을 조직했다. 저들은 또한 무력에 의하여 예측하지도 못한 대담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우리의 전해내려 오던 귀한 옥새[傳國重寶]를 강탈하고 합병 조칙(詔勅)을 압제적으로 발표했으며, 각국을 기만하여 한국의 군민이 자진 합병을 원했다고 거짓으로[誣罔] 사실을 공포함으로써 일개 군국주의적 정부의 야심으로 인하여 5천년에 가까운 문화의 종족(宗族)은 노예가 됨이 이제 10년이 되었다.

 

  합병 이후 일본의 조선 통치 정책을 대략 열거[略擧]하건대, 통계상 조선인의 부담은 7천만원을 초과했다고 하나 조선인을 위하여 지출하는 경비는 소위 교육비 40만원에 불과하며, 그 외의 전부는 우리 조선인을 압박, 침해하는 목적이나 일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지출했을 뿐이다. 이른바 교육도 열등 교육을 실시했으며, 역사적 국민성을 잘라 버리고[刈除]하고 일본인 밑에 노예가 되는 성능(性能)을 함양했을 뿐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우수한 인격적 수양을 철저하게 가로 막았고[沮礙] 그의 자유권을 박탈하여 민중을 노예로 대우했다.

 

  더욱이 신교(信敎)와 기업의 자유마저도 구속하고 법규 적용의 암독(暗毒)과 경찰 행정의 잔학으로써 인민의 재능이 자연적으로 발육하는 것을 억압하고 일거수일투족[一擧一止]의 동정에 이르기까지 구속하고 우리 민족의 재래의 미풍 양속을 허물어뜨렸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교통의 발전을 빙자하 여 인민의 사유 토지를 무상으로 강탈하고 민중을 무보수로 강제 사역했으며, 모든 조선 인민이 생계상 지대한 관계를 가지는 국유재산의 역둔토(驛屯土)를 저들의 척식회사(拓殖會社)에 교부함으로써 무제한한 일본 이민의 점거(占據)에 제공했다.

 

  그밖의 주요 기관의 독점과 이익, 권리[權衡]를 전횡(專橫)하고, 경제 정책의 운용을 해치고, 금융을 조종하고, 산업을 구속하고, 물질적 발전을 저지함으로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실업과 파산의 비참 속에 떨어지게 하여 궁벽한 동네[僻菴]의 구석[窮途]까지 모두 얼어 죽고 굶어 죽게(凍餓盡滅) 만들음에, 생활을 구하여 외지로 떠나는[移流] 자가 해마다 증가하니 반만년 이래의 주인인 우리들을 몰아내고 때려 죽여[驅除撲滅] 밖에서 들어온[客來] 일본으로 대체하려는 인류적 양심도 없는 오랜 정책[宿策]을 실행했다.

 

 일본은 또한 우리 민족의 기회 향상을 시기하고 두려워하여[猜懼], 우리들의 인류 공동 목적인 박애에 기인하여 체코 민족을 원조하려는 시베리아 원정군의 편성, 출동을 저지했다. 또 저들은 우리 민족의 독립 부흥 운동을 해묵은 원수[仇讐]로 보고 이를 음해[陰虐]의 방법으로써 열국의 눈과 귀[視聽]를 가렸으며, 세계의 물의를 방지하기 위하여 저들의 주구(走狗) 5-6인을 사역(使役)하여 이들이 조선의 각 계급의 대표라고 가칭하는 동시에, 합병은 조선 인민의 소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인(追認)한 거짓[誣罔] 증서를 작성하여 날인했으며, 다시 태상황의 비 준, 날인을 강제로 요구[强迫]했으나 허락하지 않음을 겁내어 결국 독살을 감행했다.

 

더  욱이 우리 민족이 독립 선언을 발표하고 광명정대(光明正大)한 행동과 평화, 선량한 언론을 일으키고 모아[興起會同] 행복을 축하할 때에 무력으로써 압박하고 총검으로 사격하고 구금한 자가 몇 만 명인지 모른다. 특히 애국의 열혈(熱血)에 흥분한 묘령의 자녀를 참살하고, 폭동의 진정을 구실 삼아 구금된 남녀에게 악독한 형틀[刑俱]로 육체를 훼손하고 생명을 빼앗고 사유 재산을 몰수했다.

 

  또 일본인 노동자를 사역(使役)하여 조선 의복을 착복시켜 폭행을 자행하게 하고 그 화(禍)를 우리 민족에게 씌우고 야간에 거리[街上]의 통행인을 난타하여 통행을 두절시키니, 이로 인하여 우리 전국 상인이 분개하여 문을 닫으면[閉店] 총검으로써 개시(開市)를 협박했으며 숨거나 도망친[隱避不在] 상점은 문호를 부수어 열고[破開] 점 내에 난입하여 야만무도의 잔학(殘虐)을 속행했다. 이는 오로지 세계의 눈[公眼]을 무시하고 우 리 민족을 영구히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원래 일본은 한국이 무력과 기타 물질적 실력으로 보아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구실과 동양 평화의 유지를 이유로 하여 미리 군대를 해산시켜 무력을 없애고 온갖 방법[百般]으로 간섭하여 실력의 발전을 방해, 저지하는 등 전후의 모순된 사실은 그 야심의 일례이나 이를 엄폐(掩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한국의 군주와 백성[君民]이 스스로 합병을 원했다고 거짓으로 말하고[誣 稱] 옥새[璽寶]를 강탈하여 조칙(詔勅)을 압제적으로 내렸으며, 몇몇의 역적[賊臣]과 더불어 합방 조약을 임의로 작성하매 그 당시 대소 관료는 강렬히 반항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친 자가 많았다.

 

  다수의 인민은 적수공권으로 포악한 일본 군대와 몇 년에 걸친 혈전을 행하니 종종의 독립 부흥 운동은 끊임없이 내외에 팽배했다. 그들의 강제적 합방은 무엇으로써 합의의 합병[合呑]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이와 같은 일대 사기 강박의 일시적 성공은 이로써 대국을 숨길[彌縫]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와 인도의 승리로써 세계 군국주의의 근저를 타파하여 영원한 평화를 확보하려는 국제연맹(國際聯盟)이 실시되는 오늘, 우리 민족과 일본인 간에 이해 상반되고 어름과 석탄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氷炭不相容] 관계는 언제까지나 서로 받아들이지[相容] 못할 민족적 대참화를 반드시 초래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천부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며 정의와 평화로써 세계를 개조할 시세에 만나[遭遇], 이의 부자연, 불합리한 전도(顚倒) 상태를 개선, 광정(匡正)함으로써 동양 평화를 교란시키는 화근[禍源]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것을 세계에 요구하는 것은 실로 정당한 권리이며 적법한 행위인 것이다.

 

  세계의 열국은 이에 찬동의 뜻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세계적 장애물인 저들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근절시키고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의무가 있는 4천여 년의 덕의문화(德義文化)에 오랫동안 자라온[長養] 우리들은 자유의 실권을 회복한 후에는 필연코 세계 평화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민족 대표가 이미 강화회의에 파송되었다. 모든 조선 민족의 대소 단결과 각 지방 구역 대표의 통일, 종합으로써 성립한 본단은 다시 우리 민족의 전후 사정을 여기에 개진(開陳)하는 바이다. 대의의 공의로운 결정[公決]으로써 정의에 기인(基因)하는 우리 조선의 독립을 공인해 줄 것을 정중히 요구[敬要]하는 바이다.

 

조선 건국 4252년 4월 일

조선민족대동단 대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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